음반제작자, 과연 누구인가?
음악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 곡의 음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작곡가와 작사가의 창의적인 영감, 가수의 아름다운 목소리, 연주자들의 섬세한 연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율하고 하나의 음반으로 완성시키는 ‘음반제작자’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음악 산업의 복잡한 현실 속에서, 과연 누가 법적으로 ‘음반제작자’로 인정받고 그에 따른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요? 단순히 음반 제작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작곡가나 작사가를 섭외하며, 녹음 과정을 총괄 지휘했다면 음반제작자가 될 수 있을까요? 최근의 한 흥미로운 법원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23.4.21. 선고 2020가합575791)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작권 분야에서 20년간 활동해 온 변호사로서,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이 중요한 쟁점을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내가 다 했는데, 왜 음반제작자가 아니라고?” – 한 제작자의 안타까운 사연
이 사건의 원고 A씨는 음반 기획과 제작,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베테랑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최대 주주이자 등기이사로 있던 C회사와 함께 여러 음반을 제작했습니다. A씨는 이 음반들의 기획부터 작곡가/작사가 섭외, 녹음 진행과 편집 등 전반적인 과정을 총괄 지휘했으며, 심지어 제작 비용까지 부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제작한 음반들이 피고 B회사를 통해 유통되면서 불거졌습니다. A씨는 B회사가 자신의 허락 없이 음원들을 무단으로 유통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음반제작자로서 가지는 ‘저작인접권’이 침해당했으니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여기서 핵심 쟁점은 바로 A씨가 과연 법적으로 ‘음반제작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였습니다.
‘음반제작자’의 진짜 의미: 단순히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저작권법은 음반제작자에게 강력한 ‘저작인접권’을 부여하여 그들의 노력을 보호합니다. 하지만 법이 말하는 음반제작자는 단순히 기술적인 작업을 하거나, 실연(노래, 연주)을 하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법은 여러 차례의 개정을 통해 음반제작자의 정의를 명확히 해왔는데, 이는 “음을 음반에 고정하는 데 있어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책임을 지는 자”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실적·기능적인 기여’를 넘어선 ‘법률상의 주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음반의 저작인접권을 자신에게 귀속시키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녹음 과정을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존재여야 합니다.
법원의 판단: 왜 A씨는 제작자가 아니었을까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이 A씨를 음반제작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근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획’의 주체는 누구인가?
A씨는 자신이 기획을 총괄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음반 제작과 유통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하며 기획한 주체는 A씨가 아니라 C회사 또는 그 자회사들(C 등)이라고 보았습니다. 피고 B회사와의 음원 판매 대행 계약 당사자도 모두 ‘C 등’이었고, 이 계약들은 C 등이 음반을 기획/제작하고 원천 콘텐츠를 보유한다는 전제하에 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A씨가 C회사의 제작이사로서 기능적인 역할에 기여했을 뿐, 법률상 주체로서 음반 제작을 기획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 ‘책임’의 주체는 누구인가?
음반제작에 대한 ‘책임’은 음반이 성공했을 때 이익을 얻고, 실패했을 때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음원 판매 대행 계약을 살펴보면, 음반 판매 수익 분배 및 제작비 반환 의무 등 성공과 실패에 따른 이익과 손해는 모두 B회사와 C 등이 나누게 되어 있었습니다. A씨가 음반으로 인한 이익이나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내용은 그 어떤 계약에도 없었습니다.
▶ 제작 비용은 누가 부담했는가?
통상적으로 음반제작자가 제작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A씨는 비용을 모두 지출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만한 금융거래내역이나 세금계산서 등의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C회사의 대표는 C회사가 음반 제작 비용을 부담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대중적 인지도만으로는 부족하다
A씨는 자신이 음반제작자로 널리 알려져 있고 상까지 받았으므로 저작권법상 저작인접권자로 추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언론 보도나 수상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법률상 주체로서의 음반제작자 여부와 무관하게 사실적·기능적인 역할을 담당한 경우에도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음반의 CD와 앨범 재킷에는 ‘C’ 및 ‘Ⓟ & Ⓒ [연도] C’가 명확히 표시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 기호는 음반에 관한 저작인접권을 의미하므로, C회사가 저작인접권자로 추정될 여지가 크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모든 사정들을 종합할 때, 법원은 A씨가 음반 제작에 사실적·기능적으로 기여한 바는 있지만, 음반의 저작인접권을 자신에게 귀속시키려는 의사로 전체를 기획하고 책임을 지는 ‘법률상의 주체’로서의 음반제작자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신의 권리, 어떻게 지킬 것인가? – 명확한 문서화와 표시의 중요성
이 판결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복잡한 음악 산업 환경에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창의적인 기여를 하거나 제작 과정에 깊이 관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음반 제작 전반을 법률적으로 기획하고 재정적 책임을 지는 ‘주체’임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반드시 기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 계약서에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라: 음반 제작에 여러 주체가 관여할 경우, 각자의 역할과 책임 범위, 그리고 수익 분배 및 손실 부담에 대한 내용을 계약서에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명시해야 합니다.
- ‘Ⓟ’ 기호와 함께 저작인접권자임을 명시하라: 음반 자체에 ‘Ⓟ’ 기호와 함께 자신의 실명이나 법인명을 명확히 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 기호는 음반에 관한 저작인접권을 의미하며, 이는 법적으로 권리 추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법적으로 정당하게 보호받기 위해서는 법이 정한 방식에 따라 자신의 권리 관계를 명확히 하고, 이를 철저히 문서화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나는 당연히 제작자인데’라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법적 요건을 꼼꼼히 확인하고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소중한 창작물이 합당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언제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본 자료에 게재된 내용 및 의견은 일반적인 정보제공만을 목적으로 발행된 것이며,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의 공식적인 견해나 어떤 구체적 사안에 대한 법률적 의견을 드리는 것이 아님을 알려 드립니다. Copyright@2025 DKL Partners.